포스터를 훔쳐라
포스터를 훔쳐라
2010-11-01 발행, 292 페이지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가격 : 20,000원
ISBN : 9788970595610
판매상태 : 판매중
 
디자인생각

세상의 움직임 속에서, 그곳에 존재하는 일상 속에서 디자인의 요구를 읽어 내는 그래픽디자이너 하라 켄야. 고심참담하면서 즐거이 디자인하던 35살부터 50살까지, 그 지나온 15년이라는 길목에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지평과 함께 그의 매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내 지력과 체력의 정점을 예순다섯 쯤으로 잡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변화해 갈 15년을 여백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향후 15년을 질타하는 채찍이기도 하다. 글이 없는 15년이라는 공백은 작업을 되돌아보고 디자인이라는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오히려 더 의미 있는 공백이었다. 이 책처럼 커다란 시간 공백을 품고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책은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이라 불리는 하라 켄야에게도 신출내기 그래픽디자이너 시절이 있었다?’
15년이라는 세월을 디자이너로서 정신없이 살아온 하라 켄야. 『포스터룰 훔쳐라』는 1995년에 출판된 수필집으로, 1991년부터 4년 동안 소설신초에 연재된 50개 꼭지를 연재 순서대로 수록한 것이다. 글의 태반은 신출내기 시절 디자인과 격투한 나날, 하라 켄야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들을 글감으로 삼았다. 이것을 15년이 지난 지금, ‘+3’을 보태 다시 출간했다. +3이란 요즘 그의 일상에서 겪는 작업을 글감으로 한 수필 세 꼭지를 책 뒤에 보태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묵은 수필을 현재와 연결시켰다.

신출내기 그래픽디자이너로서 디자인과 격투한 나날을 그린 오리지널판으로부터 어느덧 15년, 『포스터룰 훔쳐라』의 풋풋한 글 속에서는 그의 디자인을 생각하고 만들어 가는 모습에는 ‘백’의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감각, 사고의 자취가 보인다. 또 15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지만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인 순진함과 소박함, 주체 못할 정도로 넘치는 젊음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어느덧 쉰을 넘긴 그래픽디자이너 하라 켄야. 하지만 그는 쉰이라는 나이를 결코 젊진 않지만 늙은 나이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행하지 않고 디자인을 바라는 장소를 찾아 거기에 파고드는 그의 디자인 철학처럼 『포스터룰 훔쳐라』 속에서 디자인과의 새로운 만남과 발견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 : 하라 켄야

 

그래픽 디자이너, 일본디자인센터 대표. 무사시노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영역에 폭넓은 관점으로 접근하여,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나가노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 프로그램과 2005년 아이치 박람회 프로모션에서 일본 전통문화에 깊게 뿌리를 둔 디자인을 선보였다. 또한 상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니카 위스키, AGF를 비롯해 일본 각지의 술과 쌀 등의 홍보와 관련된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마츠야 긴자 백화점 리뉴얼 계획에서 공간과 그래픽을 가로지르는 복합적인 디자인 디렉션을 맡았으며, 우메다 병원 사인 계획에서는 촉각을 강조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 외에도, 〈건축가들의 마카로니〉, 〈리디자인 ― 일상의 21세기〉 등의 전시를 통해 기획자로서 일상에 대한 시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리디자인〉전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순회 전시하였으며, 이 전시의 의미를 인정받아 2000년에 세계산업디자인비엔날레 제품·그래픽 부문 대상과 마이니치 디자인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부터 무인양품의 자문 위원이 되었고 무인양품 광고 캠페인으로 2003년 도쿄아트디렉터스클럽 대상을 수상하였다. 북 디자인 분야에서 고단샤 출판문화상, 하라히로무상, 카메쿠라유사쿠상, 그 외의 다양한 디자인 활동으로 일본문화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HAPTIC' 'SENSEWARE' 등 상징적 키워드를 내세운 전람회를 제작하여 디자인에 대하여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서 『디자인의 디자인』은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했다. 나아가 대폭 증보한 『DESIGNING DESIGN』을 간행. 그밖에 『백白』 『왜 디자인인가』 등이 있다.

 

 

 

역자 : 이규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과학, 인문,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기획했다. 현재는 경기도 축령산 자락의 수동마을에 자리를 잡고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최후의 끽연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2』, 『도시전설 세피아』, 『새빨간 사랑』, 『야시』, 『이유』, 『개인적 체험』, 『왕들의 계곡』, 『인터넷 자본주의의 혁명』, 『뇌를 단련하다』, 『사색기행』, 『수은충』,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천황과 도쿄대』 등이 있다.

 

 

 

 

15년 공백에 대한 변
처음으로 쓰는 서문

ㆍ전차표
ㆍ오만한 병
ㆍ투명 레이디
ㆍ디자이너의 홍역
ㆍ어려운 작업
ㆍ외국인 심사원의 심정
ㆍ태평양의 우울
ㆍ다 먹지 못할 파리
ㆍ전통종이 회랑
ㆍ표고버섯과 르네상스
ㆍ라벨 장수
ㆍ기우와 오디션
ㆍ사막을 찾아서
ㆍ캔슬의 맛
ㆍ해바라기밭과 하이테크 프랑스
ㆍ포스터를 훔쳐라
ㆍ98 완성 직전에 찢어버리다
ㆍ전 세계 호텔에서 편지가 오다
ㆍ쌀과 디자인
ㆍ커피의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ㆍ[v] 이야기
ㆍ문학의 책등
ㆍ모더니즘의 고독과 쾌락
ㆍ잊고 있던 감수성
ㆍ낙관적으로 마개를 따자
ㆍ라단조의 색연필
ㆍ상자쟁이 혹은 과잉포장전
ㆍ박물관에서 귀동냥하기
ㆍ러닝하이
ㆍv대량 생산의 어지럼증
ㆍ지금도 수차는 돌고 있다
ㆍ행복한 화약고
ㆍ취미 비슷한 것
ㆍ슈퍼 프리미엄 인스턴트커피
ㆍ디자인 펑고
ㆍ구급차에 실려 가다
ㆍ어른을 위한 옥상
ㆍ종이를 디자인하다
ㆍ사진가를 만나다
ㆍ가락국수 디자인
ㆍ세쓰 씨의 가게
ㆍ내면에 낚싯줄을 드리우다
ㆍ작업실 차모임
ㆍ거리의 악사에게 사로잡히다
ㆍ책 디자인의 변화구
ㆍ제대로 된 시골 광고
ㆍ칭찬받는 처지
ㆍ라멘 사발의 로망
ㆍ건축가들의 파스타 전람회
ㆍ활자가 나아갈 길

+1 국어 입시 출제에 이용해 주세요
+2 밀라노로 향하는 아침
+3 물의 즐거움

어느새 후기를 쓰다
후기에 보태다

 

 

 

라단조의 색연필

책상 앞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색연필을 헤아려보니 스물여섯 자루다.
어릴 적 처음 쥐어본 색연필은 12색. 그것이 점차 24색, 36색으로 풍부해지다가 미대에 입학할 때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60색 세트를 구입했다. 그러나 그것을 정점으로 실제 사용하는 색은 점차 줄어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색이란 것이 묘해서 내 감성에 맞는 색상은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박스 안에 60색이 들어 있어도 거의 쓰지 않는 색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노랑 하나만 보더라도 나는 레몬옐로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렌지색이 살짝 섞인 크롬옐로를 자주 쓴다. 따라서 박스에 나란히 누운 색연필 중에서도 자주 쓰는 것과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것의 키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짤막해진 색을 보충하려고 상자 단위로 구입하자니 거의 쓰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색연필들이 아깝고 안 쓰는 색연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거치적거려서 사용 빈도가 높은 것만 연필꽂이로 옮겨놓고 키가 작아지면 그때그때 보충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26색 정도로 정해졌다. 26색이라는 수는 꽤 불안한 느낌도 들지만, 음계를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것도 아니다. 미묘한 쏠림이 있으면서도 이것은 26색이라면 부족할 것 없는 색채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기본적인 12색 라인을 다장조에 비유한다면 내 개성으로 약간의 쏠림이 있는 이 26색 라인은 요컨대 라단조쯤 되려나 하고 나름대로 납득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작업에서 이 정도 색상이면 충분하다는 말은 아니다. 인쇄 현장 같은 데서는 미묘한 색채 조화를 얻기 위해 컴퓨터 색차계로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색 뉘앙스를 찾아서 무수하게 색 교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색을 망라하자면 수만 가지 색이 있어도 부족하다. 또 색이라고 말하지만 종이나 플라스틱 같은 소재 차이에 따라 인상이 전혀 달라지고, 같은 종이라도 지질 차이에 따라 표정이 많이 달라진다. 요컨대 현상으로서의 색채는 무수히 많지만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제어하는 규칙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색연필 색채 라인업으로 표현된 것 같다는 것이다.
멀리 에둘러 표현하고 말았지만, 이 색연필 라인업을 바라보며 라단조라고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장조나 사장조 같은 비교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세대로 구분할 경우, 밝고 활기찬 색조를 보여 주는 것은 비교적 윗세대이다. 우리 아버지쯤에 해당하는 이 세대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다장조이다. 색채에 대하여 대단히 긍정적이고 작품의 색상 구사는 밝고 탁한 구석이 없이 예쁘다. 1960년대 요코오 타다노리의 작품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세대가 조금 더 내려오면 색상 구사에 굴절이 나타나고 약간 냉소적인 중간색을 구사하는 것이 눈에 띈다. 단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색상에 살짝 우울함이 엿보인다.
첫 세대의 자식 세대, 즉 우리 세대 색채는 어떠냐 하면 확실히 축축한 습기를 띤다. 윗세대의 색상 구사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상당히 굴절된 색상, 피아노로 말하면 검은 건반을 많이 두드리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상적인 색상을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이키델릭 스타일 색채가 범람하던 196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우리는 순수한 인공적 원색에는 적극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색이라면 천연의 자연색에 끌리고 만다. 밝고 선명한 색보다 낡은 책의 갈변한 종이 같은 색채나 낡은 골판지의 흐릿한 회색
혹은 녹슨 철의 위태로운 발색에서 설렘을 느끼고 식물의 씨앗이나 모래색 같은 시크하고 자연스러운 색에서 리얼리티와 공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색채를 일체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색을 쓰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멜랑콜리를 눈곱만큼 집어넣어 미묘하게 억제시키고야 만다.
아마도 자연이나 생태에 대한 관심이라는 시대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행색과는 다른 차원에서 색채도 은밀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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