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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인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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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자인》 전 편집장 최 범의 7번째 디자인 평론집

디자인의 인문학적 사유를 위하여

디자인 평론가로 활동한 지 올해로 32년인 최 범의 7번째 디자인 평론집이 출간됐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웹진 《인문 360도》에 연재한 글들을 중심으로, 일간지에 실린 칼럼들과 기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들을 한데 묶었다. 그간 출간된 평론집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띠는 이 책은 인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디자인을 이해한다.

한때 ‘◌◌과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유행이 대세였을 때마저도 디자인과 인문학을 결합한 책은 드물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두 학문 사이에 뚜렷한 관계를 찾지 않았음(못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는 사실 디자인이 아주 쉽게 소비 대상 또는 자본주의의 촉매제로만 인식되는 경향과 연관이 깊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는 디자인을 크게 문화, 사회, 역사, 윤리라는 4가지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디자인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편집자의 글

30년 이상 디자인 평론가로 활동한 전문가의 관록

디자인 비평 2기의 출발점에 서다

저자 최 범의 디자인 평론 역사는 유구하다. 그가 디자인 평론을 한 지 30년이 되던 해인 2021년에 6번째 디자인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가 출간되었다. 그전에 편집장을 지낸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를 내며 디자인 평론 1기를 마무리하고 2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즉 『디자인과 인문학적 상상력』은 최 범의 디자인 비평 2기의 출발을 알리는 책인 셈이다. 그 시작은 디자인과 인문학의 만남이 장식하는데, 저자의 말마따나 “주제나 형식, 내용도 훨씬 자유롭고 다양”하며 지난 “여섯 권의 디자인 평론집에 비하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자유롭게 펼쳐”진다. 이 책에 실린 20편의 글은 최신 현상만을 다루진 않는다. 하지만 30여 년이라는 기간을 디자인 비평에 쏟은 전문가의 날카롭고 다각적인 시선은 지나온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동시대 디자인 현상에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렇듯 최 범의 디자인 비평 2기는 지난 여섯 권의 평론집보다는 덜 묵직하게, 더 산뜻하게 시작함으로써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고자 한다. 쉽게 읽히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통찰력 있는 시선과 더불어 독자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를 끌어올린다.

디자인과 인문학의 만남이란

디자인으로 인간사를 이해한다는 것

인간사의 각 시대는 인간을 다르게 이해했고, 가장 중요시하는 지점도 각기 달랐으며, 그에 따라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도 시대별로 천차만별이었다. 디자인과 인문학을 함께 논할 땐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의 디자인을 논하는 것이다. 즉 디자인을 인간사의 역사적 전개와 관련지어 디자인이 어떤 성격을 띠고 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디자인 인문학은 디자인과 인문학의 관계와 비관계와 무관계를 동시에 들여다본다.”

저자는 디자인과 인문학의 “관계와 비관계와 무관계”를 돌아보기 위해 인문학을 문화, 사회, 역사, 윤리의 4가지 측면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도 지역적, 시대적으로 디자인과 사회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과 인문학의 유기적 연관성은 역으로 각 시대, 각 지역의 인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편, 「보론」에서 저자는 디자인이 인문학의 역사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탐구하는 좀 더 깊은 시점으로 이동하는데, 디자인에 대한 그의 명료하고 비평적인 인문학적 상상력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야를 한층 확장시킨다.

책 속에서

모더니즘의 기계적인 통합의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가 오늘날 추구하는 바는 일원론적이고 중심적일 수 없다. 그보다도 다원론적이고 탈중심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고 융합하는 새로운 통합의 패러다임이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탈중심적인 중심’이자 ‘분산된 통합’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제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한결 난도 높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창조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찾아나갈 수 있을까.

「문명의 위기와 통합」, 20쪽

과연 지금 한국 사회의 디자인에는 적은 것이 필요할까, 많은 것이 필요할까. 그리고 무엇이 왜 적어야 하고 무엇이 왜 많아야 할까. 우리에게 적은 것은 무엇이고 많은 것은 무엇일까. …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음과 많음에 대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물음이어야 한다.

「디자인 아포리즘 3」, 32쪽

해외에서도 한국인들은 금방 눈에 띈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웨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웨어는 한국인의 보호색이다. 눈에 띔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감춘다. 생존의 정글 속에서 식별됨으로써 얻는 역설적인 안전함이라고나 할까.

「유토피아로부터의 탈출?」, 49쪽

위르겐 베이는 통나무에 등받이 몇 개를 꽂은 ‘성의 없는’ 디자인으로 의자와 휴식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통나무에 등받이를 꽂으면 그것은 통나무인가 의자인가, 의자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물을 의자로 만드는가, 펄럭이는 것은 깃발인가, 바람인가, 아니면 그대의 마음인가, 뭐 이런 선문답이라고나 할까.

「일하는 의자, 쉬는 의자, 생각하는 의자」, 66쪽

디자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말이 있다. 물론 사전에 따르면 디자인은 명사이면서 동사다. 그런데 디자인이 굳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말은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고 창조적으로 디자인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니까 옷을 디자인하지 말고 멋을 디자인하며, 펜이 아니라 쓰기를, 자동차가 아니라 이동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식이다.

「장난감을 디자인할 것인가, 놀이를 디자인할 것인가」, 70쪽

서구 모던 디자이너들의 의식이 다소 과대망상에 가까웠다면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의 의식은 자괴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한국 디자이너들의 자존감 찾기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의 자존감, 과대망상과 자괴감 사이에서」, 172쪽

말하자면 디자인은 새롭거나 낯선 사물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변형하는 미적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와 전자를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눈에 보이게 했고, 디지털 기술을 컴퓨터와 휴대폰이라는 형태로 손에 잡히게 했다. 디자인은 그런 방식으로 현대사회의 소비주의에 봉사해 왔다.

「재난, 파국 그리고 디자인」, 188-189쪽

디자인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디자인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디자인을 인문학의 역사적 전개와 관련지어 디자인이 어떤 성격을 띠며 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 인문학은 디자인과 인문학의 관계와 비관계 또는 무관계를 동시에 들여다본다.

「보론」, 203쪽

차례

머리말 | 디자인의 인문학적 사유를 위하여

1. 디자인과 문화
문명의 위기와 통합: 새로운 패러다임?
디자인 아포리즘 3: 반장식주의, 모던 디자인, 포스트모던 디자인
현대 디자인의 생태학: 인터페이스 또는 피부로서의 디자인
유토피아로부터의 탈출?: ‘야생적 사고’와 디자인의 모험
앉으면 높고 서면 낮은 것은 천장만이 아니다

2. 디자인과 사회
일하는 의자, 쉬는 의자, 생각하는 의자
장난감을 디자인할 것인가, 높이를 디자인할 것인가
라디오 속의 난쟁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변화의 테크놀로지로서의 디자인
어떤 진짜 간판 분류법
배치는 권력이다: 주체와 시선

3. 디자인과 역사
역사의 수레바퀴와 개인의 수레바퀴 사이에서
‘문화적 기억’의 두 방향: 창조적 자산인가 기념품인가
바우하우스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복고의 계보학: 네오 – 레트로 – 뉴트로
고궁에서 한복 입기의 진짜 의미

4. 디자인과 윤리
죽이는 디자인, 살리는 디자인: 대중 소비사회에서 디자인의 역할
디자이너의 자존감, 과대망상과 자괴감 사이에서
신분과 장식: ‘관계의 감옥’과 ‘예’ 디자인 비판
재난, 파국 그리고 디자인: 타자의 미학인가? 타자의 윤리학인가?
태도가 디자인이 될 때,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경우

보론 | 디자인과 인문학의 어떤 만남

주석
글 출처
이미지 출처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디자인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 『공예를 생각한다』 『최 범의 서양 디자인사』 『한국 디자인과 문명의 전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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