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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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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판, 슈퍼 앞 평상, 오방색 차양막……
익숙한 풍경을 남다르게 감각하는 건축가 정이삭의 첫 산문집

건축이 찾는 미래는
건축이 놓친 ‘나머지’에 있다

건축의 역사와 이론에서 소외된 주변부, 즉 ‘나머지’를 꾸준히 탐구해 온 건축가 정이삭의 첫 산문집 『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가 안그라픽스의 건축·조경가 에세이 시리즈 ‘풍경시’ 1권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소 에이코랩의 대표 건축가이며 현재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5년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체부장관상(‘청파동 킷테’),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대상 및 목재공간대전 대상(‘N작가 주택’)을 수상하고,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는 등, 건축뿐 아니라 미술·디자인·공연 등 폭넓은 분야로 저변을 넓히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지속해 왔다. 그 동력과 지향점, 서구 중심의 건축 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 일상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애틋한 시선이 열 편의 에세이에 담겼다.

저자는 신석기 유적지부터 봉천동 판잣집까지 다채로운 공간에 얽힌 기억을 경유해, 이미 있던 것에 내재한 질서를 존중하며 작은 개입을 지향하는 자신의 건축관을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사소하나 뜻깊은 개인적인 경험과 건축·설치미술 작업 과정을 들려주며, 우리 발치에 늘 있는 흔한 풍경을 눈여겨보자고, 중심에서 시선을 돌려 ‘나머지’를 새로운 참조로 삼자고 제안한다.

본문 뒤에 실린 부록에는 평범한 거리를 찍은 사진들에 짧은 설명을 더했다. 벽돌 벽과 이어지는 벽돌 무늬 시트지의 그럴듯한 노력이나 전통 목구조 지붕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콘크리트 처마 등, 설계와 도면을 모르더라도 생활 감각처럼 몸에 새겨져 공유되는 건축의 문법은 거리 위에 구체적인 형체로 존재한다. 건축가의 예민한 시선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언뜻 보기에는 조잡한 거리의 구조물도 누군가의 필요에 응답하는 판단의 산물임을 알고, 매일 접하는 풍경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의 글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거리의 풍경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건축가 정이삭의 첫 산문집

『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는 건축이 바깥에 두었던 ‘나머지’의 의미를 탐구한 건축가 정이삭의 첫 산문집이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소 에이코랩의 대표 건축가로서 2025년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체부장관상(‘청파동 킷테’),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대상 및 목재공간대전 대상(‘N작가 주택’) 등 유수의 건축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는 등, 건축뿐 아니라 미술, 디자인, 공연 등 폭넓은 분야로 저변을 넓히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지속해 왔다. 그 동력과 지향점, 건축 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 일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하고 애틋한 시선이 열 편의 에세이에 담겼다. 본문 뒤에 실린 부록에는 거리의 평범한 풍경을 찍은 사진들에 짧은 설명을 더했다. 건축가의 기민한 시선을 따라 책을 넘기다 보면, 언뜻 보기에는 조잡한 거리의 구조물도 누군가의 필요에 응답하는 판단의 산물임을 알고, 매일 접하는 풍경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거지 아파트에 불이 났다”
“거지 아파트는 나에게 여전히 충고를 건넨다“
누구나 집이 필요하지만 누구나 집을 가질 수는 없는 세계에서 집은 무엇이어야 할까

목사였던 아버지는 가장 가난한 산동네로 식구를 데려갔다. 정이삭은 판자촌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는 교회에 살고, 친구들은 ‘거지 아파트’에 살았다. 한 판잣집이 다른 판잣집에 위태롭게 덧세워지기를 거듭하며, 세월의 두께만큼 겹겹이 쌓인 판잣집의 연합체. 사람들은 거길 거지 아파트라고 불렀다. 어느 곳은 구덩이가 움푹해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높이가 다 달랐고, 대부분 제대로 몸을 쭉 펴고 서기도 힘들었다. 저자는 그 미로 같은 거지 아파트를 친구들과 누비며 자랐다. 그가 처음 만난 건축이다.
“어느 날 거지 아파트에 불이 났다. 발화점은 건물 한가운데, 그것도 제일 아래층, 빛도 들지 않는 동굴 같은 곳이었다. 누가 자신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방석 아래 깔고 온몸에 시너를 부어 분신자살을 했다고 했다. 거지 아파트의 간절하고도 서툰 겹겹의 적층 사이사이로 검고 하얀 연기가 힘겹게 새어 나왔다.
(중략) 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 그 어떤 위대한 건축가도 위대한 건축을 먼저 배울 수는 없다. 내가 건축을 처음 배운 곳은 1980년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판자촌이다.” _「거지 아파트」

저자는 집을 예술 작품이나 이야기의 배경이 아닌 실제 삶의 현장으로 바라보며, 나머지 건축 역시 낭만적인 이미지로 전유하기를 경계한다. 대신 그것이 놓인 환경을 이해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그것을 세웠을지 고민하고, 이미 작동하는 질서를 재조직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지향한다. 이러한 태도는 구체적인 삶의 체험에서 비롯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에 수록된 산문들은 특정한 공간에 관한 기억을 경유해 저자가 건축을,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유년 시절 산동네 교회 목사의 아들로서 판자촌에서 거주한 경험은 집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판잣집을 덧대어 만들어진 봉천동 ‘거지 아파트’의 기묘한 구조와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집은 작품이나 형식이기 전에 누군가의 거처라고 말한다(「거지 아파트」). 저자의 생활공간이기도 했던 예배당을 꿈에서 다시 찾은 이야기와(「신을 잃어버린 꿈」), 이모가 지내는 요양원과 자신이 리모델링한 하수 처리장 ‘있기에-앞서’를 차례로 방문한 날의 일화(「콩자반과 진미채」)에서 그는 자신의 바탕을 이룬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다.

소수의 기념비보다 이름 없는 다수의 집을 궁금해하고
완성된 결과보다 그에 내재한 판단을 헤아리려는 시선

“건축사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들을 기억해 왔다. 거석은 남고 생활의 구축은 사라진다. 내가 다시 보려는 것은 그렇게 사라진 것들, 이름 없는 평상과 처마, 그 안에 축적된 손의 판단이다.” _「새로운 참조」
정이삭은 건축이 특정한 지역과 특정한 건축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을 참조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건축은 언제나 하나의 중심을 세우고 바깥을 만들어냈다.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출발점이 있다고 전제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첫 집’을 소환해 순수한 기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저자는 서구 중심적인 기존 담론의 한계를 짚으며, ‘건축은 어디서 왔는가’를 묻기보다 ‘건축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건축의 기원을 추적할 때 대다수는 카라한 테페나 괴베클리 테페처럼 잘 보존된 유적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소수의 기념비는 남고, 다수의 집은 사라진다. 저자는 기록되지도 기념되지도 않은 삶의 풍경에 주목해, 건축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이어져 온 생활의 습속에서 원시성을 찾는다. 인간은 비를 피하고 싶어서 지붕을 만들고, 추위를 막고 싶어서 벽을 세운다. 이는 몸의 필요에 응답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발휘한 판단에 따른 행위이자, 제한된 조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생활의 원시성」). 이 판단의 감각은 구체적인 몸들을 통과하며 수정과 조정을 반복하고, 명명이나 제도화 없이도 지속되는 삶의 질서로 자리 잡는다(「우리가 가진 것은 몸뿐」).
제도에 포섭되지 못한 ‘나머지 건축’은 이러한 원시적 감각이 동시대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령 슈퍼 앞 노란 장판 평상, 오방색 차양막, 파란 물탱크는 어떤 지침이나 합의 없이도 비슷한 생김새로 거리 곳곳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각기 다른 작업자의 손과 사용자의 몸, 주변 지형과 근방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와 같은 구체적인 조건이 차이를 빚어낸다. 저자는 건축이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는 수많은 몸을 통과하며 변주된 수많은 방식 속에 존재하며, 건축이 찾는 해답은 우리가 이미 몸으로 겪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눈여겨보지 못한 현실 속에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노란 평상과 폐허 리조트
건축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장소들

어떤 글은 흥미진진한 탐방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저자는 공간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건축가의 예리한 감각과 섬세한 필치로 여러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때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설악동의 어느 리조트를 탐방하며 90년대 수학여행을 떠올리고, 폐허의 쓸쓸함 속에서 설악 일대가 지나온 역사를 되짚는다(「설악동 폐허 탐방」). 어두컴컴한 수덕사에서 후각과 촉각, 청각으로 향냄새와 기둥, 법고 소리를 마주하고 건물 아닌 것의 건축에 대해 생각한다(「수덕사 법고 소리」). 기울어진 세상에서 평평한 자리를 만들려는 의지를 거리에 널린 평상으로부터 발견하고, 건축의 조건에 관한 사유로 나아간다(「노란 평상」).
건축이 한 사람의 설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건축자들의 손과 운영진의 기획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생생한 대화체로 건물을 보수하는 과정을 그려내어 건축 현장에서 협업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하며(「건축자들」), ‘신갈’ ‘있기에-앞서’ ‘색동집’ 등 작업에 얽힌 비화도 곳곳에 녹여내었다. 구체적인 묘사로 건축 현장을 경험해 본 전공자 및 종사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건축 전공자가 아닌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전문 용어는 풀어 쓰거나 해설을 더했다.
부록에는 저자가 전국 각지에서 포착한 나머지 건축의 사진과 그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나머지 채집록」). 엉뚱한 재료를 어설프게 엮어 만들어진 사물과 건물이다. 건축자의 절실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투박한 형태는 때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저자는 그것에서 누군가의 필요와 가장 원초적인 건축의 판단을 읽어낸다.

‘풍경시’
안그라픽스 건축·조경가 에세이 시리즈

안그라픽스가 새롭게 시작하는 ‘풍경시’ 시리즈는 장소를 만드는 사람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감각하고 기억하는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 철학이 담긴 에세이를 느낌의 장면과 함께 보여주며, 프로젝트에 얽힌 숨은 이야기, 작품 세계를 결정지은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희미한 영감이 찾아온 순간, 만들고 싶던 세계를 손 가는 대로 그려둔 스케치로 가득한 노트를 펼쳐보듯, 장소의 뒷이야기와 이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머물고 걷고 바라보는 장소는 시간을 품으며 비로소 깊어집니다. 그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거닐고 오래 함께 기억하자는 마음에서 풍경시는 탄생했습니다.

사람은 풍경에 산다. 장소는 기억의 도서관
시간 속에 언어로 짓는 풍경의 집, 풍경시

01 정이삭 | 우리는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
02 정욱주 | 의연한 풍화
03 강예린 이치훈 | 빈집은 비어서 비어 있음

  • 계속 출간됩니다.

책 속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생활의 풍경이자 그 풍경의 기원이다. 거대한 돌기둥만이 우리의 기원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원시 오두막이나 선사시대 건축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건축이 수많은 답을 정하기 전부터 인간이 자신의 몸과 삶을 위해 발휘해 온 판단의 감각, 그 감각에 나는 끌린다.

12쪽, 「생활의 원시성」

우리 동네에선 모두 자기 집을 판잣집이라고 불렀다. 영동개발 이후 서울 강남구 주택의 기본값이 아파트라면, 1980년대 서울 관악구 봉천5동에서는 집의 기본값이 판잣집이었다는 말이다. 거지 아파트는 그 모든 판잣집 중에 가장 판잣집다운 건축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진화한’ 판잣집이기도 했다. 한 가구도 아니고 여러 가구가 좁은 통로로 연결된, 벌집 같기도 개미집 같기도 한 판잣집의 연합체였다. 수많은 비정형의 세대들이 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한 지붕으로 덮여 있었으니, 그건 홀로 서 있는 판잣집 이상의 존재감이었다. 어디부터 외부이고 어디부터 내부인지 분간이 안 되고, 내 것과 네 것의 경계에 물리적으로 금을 긋기가 어려웠다. 실내 공용 통로처럼 적당히 공적인 영역에는 내 살림이 놓일 수 있다는 심리적 W경계만 있을 뿐이었다. 동굴이나 미로 같은 이런 실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연결된 듯 끊겨 있고, 막혔다 하면 다시 나타나는 작은 사적 공간과 이야기가 있었다.

22-23쪽, 「거지 아파트」

우리는 모두 거리에서 처음 건축을 배운다. 그 어떤 위대한 건축가도 위대한 건축을 먼저 배울 수는 없다. 내가 건축을 처음 배운 곳은 1980년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판자촌이다. 그중에서도 허리를 펼 수 없던 그곳. 내 키 작은 친구의 집이자, 충분한 불꽃이 되지 못한 한 인생이 살았던 곳. 거지 아파트는 나에게 여전히 충고를 건넨다. 집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집은 형식을 넘어선 개념이다. 건축에서 논하는 양식이나 개념의 문제이기 이전에, 먹고 입는 것처럼 가장 기초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요건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어떤 양식을 구현하는지, 어떤 개념을 담는지에 집중하다 보면, 집이 누군가의 거처여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집이 이미지와 서사를 위한 도구가 되는 순간, 집이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30쪽, 「거지 아파트」

이 세상이 그렇듯 건축계에도 승패의 게임이 있다. (중략) 나는 이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그 게임 밖에 놓인 것들이다. 이름 없는 장소, 긍정할 수만은 없는 공간들. 그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일. 너무 작은 변화라 티가 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삶이 지속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다르게 존재하도록 돕는 집. 내가 그런 집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32-33쪽, 「거지 아파트」

이곳은 시화공단의 하수를 처리하던 시설이었다. 기능이 멈춘 이후에도 구조물들은 남아 있었다. 원형 슬러지 농축조(하수 처리 과정에서 생긴 찌꺼기sludge를 농축하는 시설), 분배조(유입된 오수의 양을 조절해 후속 시설로 보내는 저장조), 배관, 점검 데크.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둡고 습하고 거칠었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이 공간을 빠르게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을 있기에–앞서라고 지었다. 어떤 기능이 있기 전에, 어떤 이름이 붙기 전에, 이 장소가 무엇이 될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자신을 알아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50-51쪽, 「콩자반과 진미채」

존재 이유가 사라진 설악동 일대의 숙소와 편의 시설들이 대부분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휴업 상태다. ○○파크, ○○장, ○○유스텔.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철 지난 이름의 간판들. 500대, 1000대 규모의 주차장은 텅 비었고 진입로가 막혀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의 유년 시절에서 한 페이지를 담당했을 이곳은 지금 한물간 유령도시가 됐다. 그렇게 사랑받다가도 이렇게 차갑게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설렘을 가득 안고 도착한 고등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모습, 특산물을 사고 게임랜드를 드나드는 청장년의 남녀들이 유령처럼 떠오를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65쪽, 「설악동 폐허 탐방」

건축의 바깥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어요. 너무 일상적이라서, 너무 값싸서, 너무 임시적이라서, 너무 많이 봐서. 나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요. 그게 사실은 우리 생활의 대부분이니까요. 좋은 건축은 잡지에 나오고 상도 받고 사진도 남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곳에서 살지 않아요. 사람들은 노란 장판 위에서 수박을 자르고, 천막 아래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요. 그런 것들이 훨씬 넓은 건축의 감각이라고, 나는 믿어요.

89쪽, 「노란 평상」

건축은 지키는 일이기 전에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건축도 있을 수 있다. 기록으로 남은 건축, 박물관이 된 건축, 사진 속에만 있는 건축. 그런 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머물던 방식이 사라지면 건축은 어딘가 얇아진다. 두께가 빠진다. 수덕사의 대웅전이 그날 내게 충만한 감각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오래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아직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고가 울리고, 목탁이 울리고, 초가 켜지고, 바람이 들어오고, 나는 기둥에 기대앉아 있었다. 건축은 보존된 상태가 아니라 작동하는 시간에서 다시 생성하고 있었다.

104쪽, 「수덕사 법고 소리」

물이 새면 덮고, 타일이 떨어지면 말리고, 줄눈을 다시 채우고, 금속을 접어 붙이고, 비가 오기 전에 옥탑에 올라가 노끈을 묶는다. 그 일들은 멋진 이름을 갖지 못한다. 어떤 일은 설계도 아니고 시공도 아니고 감리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없으면 건축은 너무 쉽게 젖고, 들뜨고, 벌어지고, 무너진다. 어쩌면 건축은 누군가의 이름으로 완성되는 일이라기보다, 많은 사람의 손을 지나 겨우 버티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120쪽, 「건축자들」

우리가 가진 것은 몸뿐이다.
춤은 금방 사라진다. 평상은 조금 더 오래 남는다. 계단은 더 오래 닳는다. 건물은 때로 한 세대를 버틴다. 그러나 결국 모두 사라진다.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과한 몸의 기억일 것이다.
누군가 조금 더 평평한 곳에 앉았던 기억. 누군가 조금 덜 두려운 계단을 내려갔던 기억. 비가 오기 전 옥탑 위에서 비닐을 붙잡던 손의 기억. 무대 위에서 파란 옷을 벗고 세계의 색이 되던 몸의 기억.
건축은 그 기억을 물질로 붙잡아 조금 늦게 사라지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몸의 필요를 대신 기억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137-138쪽, 「우리가 가진 것은 몸뿐」

노란 장판이 깔린 평상이었다. 그 물건은 건축적으로 분석되기 이전에 이미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슈퍼 주인의 허락 없이 앉아도 된다고, 잠시 앉아 먹고 이야기 나누라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 노란색에는 긴 기억이 담겨 있다. 한지 위에 콩기름을 먹여 만드는 전통 바닥 마감은 밝고 따뜻한 황색 표면을 만들어냈다. 번거로운 제작 절차와 숙련된 손을 필요로 하는 그 기법은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노란색 비닐 장판이다. 재료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바닥을 다루는 방식과 색에 대한 감각은 묘하게 이어졌다. 한국 전역에서 아무도 합의한 적 없이 노란 장판이 평상의 재료로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로 설명된 적 없는 감각이 재료를 통해 전달된 결과에 가깝다.

156쪽, 「새로운 참조」

차례

생활의 원시성
거지 아파트
신을 잃어버린 꿈
콩자반과 진미채
설악동 폐허 탐방
노란 평상
수덕사 법고 소리
건축자들
우리가 가진 것은 몸뿐
새로운 참조

부록. 나머지 채집록

정이삭

건축사 사무소 에이코랩(a.co.lab)을 이끄는 대표 건축가. 현재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 설계를 비롯해 미술, 디자인, 공연 등 폭넓은 형식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2025), ‘청파동 킷테’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체부장관상(2025), ‘N작가 주택’으로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대상(2025)과 목재공간대전 대상(2025), ‘있기에-앞서’로 대한민국 국토대전 국토교통부장관상(2025) 등을 수상했고,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2016)을 비롯한 국내외 전시에 기획자 또는 작가로 참여했다. 공저로 『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 『THE FAR GAM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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