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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요리후지 분페이의 체험적 직업론

デザインの仕事

온라인 판매처

북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 저술가
‘정리되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
요리후지 분페이가 전하는 디자인이라는 일

이 책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은 디자인하는 사람 요리후지 분페이가 20년 넘게 일하며 얻은 경험을 가감 없이 정리한 책이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때문이다. 요리후지 분페이는 책을 디자인하고, 광고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린다. 결국 평면의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일이다. 그는 광고 업계에서는 책 만드는 사람으로, 출판 업계에서는 이것저것 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사회에서 규정한 틀에 비추어 ‘정리되지 않은’ 사람인 셈이다. 평면의 세계를 다룬다고 하지만 그는 매우 입체적이다.

편집자의 글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꼭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마치 반작용과 같습니다. 일이라는 거센 작용으로 단련되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요리후지 분페이

평면의 세계, 입체적인 사람

일본의 철도회사 도쿄 메트로에 광고 포스터가 붙었다. 역이나 열차 안에서 지켜야 할 매너에 관해 일러두는 내용이었는데, 유머러스한 그림과 간결한 문구로 큰 공감을 얻었다. 이를테면 공공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일상적인 모습으로 재현하고 ‘집에서 하자’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식이다. 논리를 탑재한 엄밀한 문장으로 지침을 전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두루뭉술하고 유연한 메시지가 필요한 법이다. 처음 광고를 시작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매너 광고 ‘○○에서 하자(○○でやろう。)’ 시리즈 이야기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은 요리후지 분페이는 그림을 통해 자유롭게 사고하며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리후지 분페이는 재치 넘치는 발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태도로 세상과 대면하는 그의 작업은 인간적이고 유쾌하며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그가 감내한 노력과 성실하게 쌓아 올린 시간에 대해 언급한 적은 드물다.

“나는 그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이너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존경한다. ‘표현의 완성’이라는 목표 지점에 집착하기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을 포괄적으로 분석해 목표 지점은 저쪽일 거라며 이끌어주는 길잡이, 그가 바로 요리후지 분페이다.” —나가오카 겐메이(長岡賢明)

기다리고 체득하는 일

요리후지 분페이가 복기하는 자전적 이야기는 생생한 날것이다. 그림을 즐겨 그리던 꼬마가 디자인이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고군분투하며 지금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보지 못한 유년기, 치열한 경쟁 속에 보낸 학창 시절, 밤낮으로 로봇처럼 일만 하던 회사 생활, 디자이너로서 독립하여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까지의 노력, 여러 사람과 의견을 조율해가는 과정,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방법 등 진솔하고 신랄한 에피소드가 쏟아진다. 요리후지 분페이는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며 가끔 글도 쓴다. 그가 작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역시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리고 만들면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고 나니,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해졌다고 말한다. 한편 기억의 조각들과 흩어진 말을 모아 글로 엮은 기무라 슌스케는 요리후지 분페이와 15년 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전문 인터뷰어로,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에게 몰두할 수 있도록 조력하였다.

“나는 걸작이나 높은 기준을 달성하는 일만 노리다가 뜻대로 잘 되지 않아 결국 과제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홈런 아니면 아웃이라며 9회 말까지 방망이 한번 휘두르지 않고 와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실무를 하며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도 한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홈런을 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눈앞에 다가오는 번트를 쳤다. 그러자 점차 홈런을 칠 수 있는 실력이 생긴 것 같다.” —요리후지 분페이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는 시대

자기 자신을 잊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려온 요리후지 분페이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아갈지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이 완성되었다. 요리후지 분페이는 직업으로서의 디자이너가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고 말한다.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축적해왔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일하는 방법이나 직업에 관한 조언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특정 직업보다는 ‘어떤 사람인가’로 자신을 규정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 연식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다시 각자의 꿈을 꾸는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어떤 일에 성실하게 몰두하고 있다면 공감할 만한, 한 사람의 삶이 담긴 성찰의 기록이자 ‘체험적 직업론’이다. 그는 말한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아웃풋이 아니라 내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웃풋 하는 기술이 여러 사람을 구할지 모른다고.

추천사

그를 ‘디자이너’라고 단정지어 부르기에는 너무 아깝고 또 그런 틀에 끼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이너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존경한다.

나가오카 겐메이 (디앤디파트먼트 대표)

이 책은 사회라는 강에서 디자인이라는 배에 올라 종횡무진 나아가는 그의 ‘항해 일지’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던 나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뱃멀미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김욱 (로컬앤드 대표)

작업하다 보면 종종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그의 힘이 강력하게 발휘된다. 자신의 생각을 소비자의 감각에 따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데, 생각을 확장하고 정리하는 능력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

나는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말하는 디자이너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는 그동안 인식되어온 디자이너의 일에 대한 거친 반작용일 것이다. 나는 이런 반작용이 분페이가 말하는 새로운 인식의 ‘실존적 이퀄리티’를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이재영 (6699프레스 대표)

책 속에서

나는 스스로 지금 정말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실제로 “분페이 씨는 참 즐겁게 일하네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좋아, 즐거워 보인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마음먹고 오로지 해야 할 일에 응했다. 너무 정신없을 때는 우울해질 여유조차 없는 법이다.

「디자인을 시작하다 – 터놓기 어려운 내면과 마주하는 법」, 48쪽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유는 차이와는 다른 독창성이다. 독창성에는 ‘차이’와 ‘실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둘을 양자택일하지 않고 하나로 볼 수는 없을까? 차이에 주목해 그 질이 향상되는 방법을 ‘레버리지’, 실존에 주목해 그 질을 높여가는 방법을 ‘이퀄리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디자이너의 작업 – 양극에서 균형 잡기」, 85쪽

〈어른을 위한 흡연 교양 강좌〉는 어딘가 제멋대로인 구제 불능 어른을 긍정한다. 나 역시 타이틀을 내걸고 당당하게 구제 불능 인간을 그려서 행복하다고 할까, 작업하는 내내 의욕이 넘친다. 특히 조금 삐뚤어지고 싶을 때 그림이 잘 그려진다.

「디자이너의 작업 – 어른을 위한 흡연 교양 강좌」, 90쪽

아이들이 그린 ‘사람’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관심 없는 누군가를 그린 그림은 매우 대충 그린 듯한 느낌이 든다. 나도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되겠다는 태도로 그와 비슷한 모양을 선 몇 개로 쓱 그리고 만다. 반면 가족이나 친구를 그릴 때는 선에 좀 망설임이 있다고 할까,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과 그림 사이의 차이를 메우려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림에 그려진 선의 개수나 망설인 끝에 그린 하나의 선을 통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아이디어에서 형태로 – 그림과 디자인을 성숙시킨다는 것」, 111쪽

디자인의 역할이 잘 팔리게 하는 것뿐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북 디자인은 책을 쓴 사람 곁에 나란히 서는 일이다. 따라서 광고를 만드는 일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긴밀한 작업이라고 느낀다.

「북 디자인에 관하여 – 책 내용을 언어화하기」, 169쪽

사회에서 규정한 ‘직업’은 마스크나 깃발처럼 기능이 나뉘어 있다. 하지만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시대에는 ‘오늘은 마스크였지만, 내일은 망치가 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북 디자인에 관하여 – 아웃풋 과정을 체계화할 수는 없을까」, 205쪽

A에서 B로의 변화가 아니라 ABCD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다. 변화에 대응하는 것과 변화가 보편화된 일상에서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새로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나이와 상관없이 매한가지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지속의 기술 –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는 시대」, 210쪽

차례

디자인이라는 일

디자인을 시작하다
나의 원점이 된 데생
입시 미술학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일하다
터놓기 어려운 내면과 마주하는 법
만화에서 위로를 받다
독립한 디자이너의 개성
발주와 수주의 벽을 넘다

북 디자인에 관하여
북 디자인은 비평이다
표지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하는 일
읽으며 실마리를 풀어가다
책 내용을 언어화하기
재작업은 어떻게 협의할 것인가
좋은 디자인과 팔리는 디자인의 교차점
품질과 효율의 틈새
일본어로 디자인하기

디자이너의 작업
디자인과 프레젠테이션을 둘러싼 사회
디자이너와 스토리의 관계
양극단에서 균형잡기
어른을 위한 흡연 교양 강좌
매너 광고와 픽토그램
가끔은 완벽하지 않은 설계도 필요하다

아이디어에서 형태로
그림과 디자인을 성숙시킨다는 것
기다리는 시간 80, 만드는 시간 20
슬럼프는 랜덤 신호처럼 찾아온다
외부와의 연계도 제작요소
마른 잎이 떨어지고 시트를 활짝 펼치듯

지속의 기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과 조직
질서를 생각하는 학문
아웃풋 과정을 체계화할 수는 없을까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관
창의성과 광기의 관계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는 시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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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후지 분페이

북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저술가. 재치 넘치는 작업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사시노미술대학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중퇴하고,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일했다. 1988년 요리후지디자인사무실을 열고, 2000년 유한회사 분페이긴자를 설립했다. 2008년 『생활잡담수첩』,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로 제29회 고단샤 출판문화상 북디자인부문을 수상했다. 카피라이터 오카모토 긴야岡本欣也와 함께 제작한 일본담배산업의 포스터와 신문광고로 도쿄ADC상과 일본타이포그래피연감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죽음 카탈로그』, 『원소생활』 등이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지진』, 『숫자의 척도』, 『쾌변천국』, 『낙서마스터』 등이 있다.

기무라 슌스케

인터뷰어이자 저술가. 도쿄대학 재학 시절 일본의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花隆)의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인터뷰어의 길로 들어섰다. 카피라이터 이토이 시게사토(糸井重⾥) 사무실을 거쳐 독립했다.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20년 동안 1,000명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지은 책으로 『인터뷰』 『좋은 서점원』 『만화 편집자』 『기인 하니야 유타카의 초상』 『일을 하는 작은 행복』 등이 있다.

서하나

건축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다가 직접 디자인하기보다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외어전문학교에서 일한통번역 과정을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언어도 디자인이라고 여기면서, 일한 번역가와 출판 편집자를 오가며 책을 기획하고 만든다. 『토닥토닥 마무앙』 『초예술 토머슨』 『저공비행』 『느긋하고 자유롭게 킨츠기 홈 클래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